[인터뷰] 서도호의 귀향, 그를 울게 만든 작품과 완벽한 집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전시에서 세계적 작가 서도호는 가족, 이동, 그리고 한 사람의 삶을 담고 있는 사적인 물건들에 대해 성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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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ted person in black and blue clothing beside a colorful wall artwork of repeated marks.
서도호 작가

그의 생애 가장 큰 전시가 서울에서 열리기 한 달 전, 작가는 코트 한 벌을 입다 눈물을 흘렸다. 지난 8월 27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막한 대규모 전시의 작가이자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서도호가 그 주인공이다. 

서 작가가 코트를 입으며 눈물을 흘린 순간, 카메라가 돌고 있었다. 그 장면은 지금 전시장에서 비디오로 흘러나온다. 

Dark coat with a colorful patchwork lining displayed on a stand against a light background.
사랑의 기억(래코드 협업), 2026, 모직, 나일론 의류

겉으로 보면 짙은 색 울 코트일 뿐이다. 하지만, 코트 안쪽에는 서 작가의 아버지 고(故) 서세옥 화백과 어머니, 아내, 두 딸이 입던 옷에서 떼어낸 주머니가 달려 있고, 주머니마다 옷 주인이 지니고 다니던 물건이 하나씩 들어 있다.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RE;CODE)가 <사랑의 기억>이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가와 함께 만든 옷이다. 

“팔을 옷에 넣었는데, 엄청난 에너지필드로 제 손이 들어가는 거예요.” 

작가는 전시 개막 전후 코리아중앙데일리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날 이후 그는 며칠 동안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너무나 따뜻한 에너지가 저를 감싸는 느낌이었어요.” 그는 이 경험을 설명할 말을 잘 찾지 못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감정적(emotional)이어서 그랬다고 할 수 있지만, 꼭 그건 아닌 것 같았다”면서 “처음 겪어보는 경험”이었다고 했다. 

서도호는 30년 넘게 자신이 살았던 장소와 몸에 닿았던 옷으로 작품을 만들어왔다. 래코드와 만든 그 코트는 작가가 자기 작업의 관객이 된 순간이었다. 

올해 64세인 서도호는 국제 미술계에서 가장 많이 소개되는 거장 중 한 명이다. 그를 그 자리에 올려놓은 작업은 건축적이다. 한국과 해외에서 작가 본인이 살았던 모든 집을 나일론과 폴리에스터로 1대1 스케일로 다시 지은, 투명하게 비치는 천 구조물들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와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 스미스소니언에 설치됐고 지난해에는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내년 2월까지 이어지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는 그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다. 작가는 지난 주 전시장에서 코리아중앙데일리에 두 시간을 내줬다. 수십 년에 걸친 개인사와 한옥이 이제 한국 관객에게 오히려 낯설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 완벽한 집이 왜 빈 공간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한국어와 영어를 넘나들며 오갔다. 

 

26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서도호 개인전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들고 다닐 수 있는 가장 작은 공간 

서 작가는 대학을 마치고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한국에서 자랐다. 그 때까지 인생의 대부분을 교복과 군복을 입고 보냈다. 전시장에서 그 옷 10벌을 이어 붙인 작업은 학교나 군대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수십 년째 들고 다니는 질문에 관한 것이다. 

Man in black sweater standing before intricate wire and thread wall sculptures.
서도호 작가

“7년에 한 번씩 몸에 있는 모든 세포가 다 회복(renewal)된다고 하잖아요. 그러면 7년 전 몸과 나는 완전히 다른 몸이 되는데 인식은 똑같아요. 나는 ‘나’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가 제 질문이었어요.” 

껍데기가 바뀌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고쳐 말했다. 

“껍데기만 바뀌는 게 아니죠. 몸 전체, 속까지 바뀌는데 어떻게 나는 나라고 느끼고 생각할까. 그런 게 제 관심사예요.” 

그는 자신을 시각예술가라고 규정한다. “저는 비주얼적인 것을 다루니까 그런 걸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관심을 가지는 거죠.” 

그 표현의 출발점이 옷이었다. 작가는 1991~92년 미국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RISD) 조소 수업에서 군용 재킷 안감에 군번태그 3000개를 단 <메탈 재킷>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장 초입, “씨앗은행(seedbank)”이라 이름 붙인 구역에 놓여 있다. 옷이 무엇인지에 대한 작가의 설명은 그때 이후 달라지지 않았다. 들고 다닐 수 있는 가장 작은 개인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시각적이라기보다 물리적이다. 

“집이나 옷이 우리 체온, 몸과 직접 닿는 거잖아요. 특히 옷은 몸을 감싸고요.” 작가는 “에너지를 측정하는 기계가 있다면 에너지가 제일 많이 배어 있는 물건인 거예요. 그래서 버리기가 어려워요”라고 했다. 

비단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두 딸을 키우면서 그는 아이들이 갖고 놀던 장난감도, 옷도, 신발도 버리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신발에 가장 에너지가 많이 쌓인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몸무게를 전부 받아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옷은 나눠 입어도 신발은 잘 물려주지 않는 관습이 있다고 그는 보았다. 그가 꺼낸 단어는 '족적'이었다. 

“눈이 온 땅에 발을 대면 눈이 녹으면서 발자국이 생기잖아요. 그걸 생각했어요.” 

옷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집으로 넘어갔다. 

“옷은 집이랑 비슷한 거예요. 우리가 항상 새 집에 살지는 않잖아요. 남들이 살았던 집에서 살기도 하고. 그래서 제 작품에서 사람들이 본인의 집을 찾는 것 같아요.” 

26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서도호 개인전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아무도 없던 방에서 나아가다 

서도호를 알린 천 작업들은 대부분 혼자 살던 시절 그가 만든 것이었다.

26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서도호 개인전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가 전시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조그만 아파트 가운데 앉아서 저는 벽이나 그 공간과 대화를 했죠.” 그는 “ 방과 저 사이에 아무도 없었어요. 그 결과가 제 천 작업입니다”고 말했다. 

결혼하고 런던에서 첫아이가 태어나면서 그 자리에 사람이 들어섰다. 

“가족이 생기니까, 저 혼자 있던 공간에 사람이 중간에 들어서서 가족과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들어오게 돼요.” 

작가 부부는 일찍부터 아이들이 입고 가지고 논 것을 전부 남겨두기로 했다. 무엇에 쓸지는 정하지 않은 채였다. 5~6년 만에 아이들의 물건과 옷이 담긴 상자들이 작업실을 꽉 채웠다. 

지금 그 옷들은 나이테처럼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장에 쌓여 있다. 한쪽은 카디건, 한쪽은 레깅스. 가장 작은 것부터 차례로 올라가, 몇 해 치 성장을 단면으로 보게 된다. 두 아이의 옷이 섞여 있고, 그중 70~80%는 사촌이나 지인들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그 옆에는 작가 본인의 손과 딸들의 손 사이에 있던 공간을 그대로 떠낸 작업이 놓여 있다. 손이 커지는 동안 계속 떠냈고, 색은 아이들이 직접 골랐다. 

 

미국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서 작가는 20대 후반에 한국을 떠났다. 그 이후 붙어 다닌 설명이 그를 오랫동안 불편하게 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까지도 사람들은 제 작업이 미국에 도착한 순간 마법처럼 시작된 것처럼 이야기했다”며 “제 핵심적인 관심사 상당수는 한국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그건 꽤 답답한 일”이라고 했다. 

RISD와 컬럼비아대에서 동료 학생들은 그의 그림이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아류라고 했다. 그는 그 영향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때까지도 그는 한국화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바닥 (1997-2000)

“조금 충격이었어요. 다른 시각 문화에 대한 지식이 그만큼 없다는 것이.” 

그 간극이 지금 전시장에 걸린 가장 낯선 형태의 작업으로 이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실로 만든 조각 일부는 3D 모델링 프로그램 라이노(Rhino)의 플러그인인 그래스호퍼(Grasshopper)로 만들어졌다. 작가가 넣는 명령어는 단순하다. 

“개미가 집에 들어와서 문손잡이나 표면을 돌아다니는 걸 연상해서 그런 명령어를 넣어요. 개미가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고, 그 흔적이 남는 식이에요.” 그는 “아주 간단한 명령을 주면 컴퓨터가 알아서 해요. 그래서 결과를 예측 못 하죠”라고 했다. 

이토록, 작가의 손을 작품에서 걷어내는 일, 작가라는 개체의 의미를 묻는 일을 서 작가는 오래 해왔다. 

“제가 관심 있는 건 작가의 ‘작가 됨’(authorship)에 대해서예요. 저는 옛날부터 그걸 많이 질문하고 있거든요.” 그는 “아이러니하게 그게 동양화에서 나온 거예요. 동양화는 작가 의도대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경우가 있잖아요”라고 했다. 

서도호에게 아이디어는 갑자기 온다. “우리말로는 ‘전광석화’라고 그러죠. 번개가 내리치듯이 아이디어들이 나오는데, 그걸 빨리 잡아두는 방법은 조그맣게 그리는 거예요.” 그렇게 붙잡은 것들이 이번 전시에 나온 스케치북 16권에 들어 있다. 

그는 "90년대 초부터 같은 크기, 같은 브랜드의 스케치북을 들고 다닌다"고 말했다. "사실 저는 그것들을 드로잉이라기보다 영화의 스틸컷에 가깝게 봅니다. 제게 그것들은 계속 움직이고 있고, 책과 제 머릿속을 돌아다니다가 앞의 것들을 다 잊어버린 10년 뒤에 다시 나타나곤 합니다." 

Visitors view a large suspended architectural installation in a bright museum gallery.
26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서도호 개인전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낯설어진 집, 귀향과 서울 

작가는 이번 전시를 “귀향(homecoming)처럼 느낀다”고 말했다. 

“제가 태어난 도시로 돌아오는 것인데, 어떤 의미에서는 정신적으로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도시이지만, 제가 미국으로 떠나던 때의 모습으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도시이기도 하죠. 도시가 변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저는 누구도 완전히 같은 장소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서도호 전 전시 전경

그가 1990년대부터 비단으로, 천으로, 흑연 탁본으로 반복해 옮겨온 성북동 부모님 댁 한옥이 있던 부지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차로 10분 거리다. 인터뷰가 있던 날 아침에도 그는 그곳에서 미술관으로 왔다. 

그런데도 그는 이 귀환, 또는 귀향이 간단하리라고 보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 우리 한국 사람들은 한옥을 두고 ‘한옥이다, 한국의 전통 가옥이다’라고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사실 한옥에서 살아본 분들은 거의 없단 말이에요.” 그는 “60~70년대에는 그래도 한옥에서 사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지금 젊은 세대들은 진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도”라고 말했다. 

한옥에서 자란 경험 탓에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느꼈다는 ‘맥락에서 벗어난’ 감각이 이번에 서울로 돌아오면서 해소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그 감각이 한 층 더 꼬인다고. 그 대목에서 작가는 씁쓸하다기보다 오히려 유쾌해 보였다. 

그렇다면 한 번도 그 집에 가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이 작업이 왜 통하는가. 

“자기가 원하는 디자인의 집을 짓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다 이미 지어진 공간에서 살잖아요. 월세건 전세 건요. 그래서 눈에 익숙한 거예요.” 

유학생들이 사는 값싼 아파트에 들어가는 가장 저렴한 냉장고, 아무도 고르지 않은 건물에 같은 높이로 달린 같은 문손잡이 같은 것들이 관객이 보는 익숙한 것들이다. 

정작 작가는 자신의 작품들을 볼 때마다 다른 것을 느낀다. 

“제 작품을 볼 때마다 저는 참 묘하게 섬뜩(uncanny)하다, 그런 생각을 해요.” 

 

완벽한 집은 빈 공간이다 

전시 막바지에는 1990년대 후반부터 서도호가 되돌아오고 있는 프로젝트의 모형이 있다. 그가 살았던 도시들을 다리로 잇고 그 중간 지점에 집을 두는 작업이다. 그가 찾는 것은 지리적 거리도 문화적 거리도 없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집이다. 

작가가 이 프로젝트에서 계속 물어온 것은 하나였다. “어떻게 하면 제 인생에서 중요한 도시들을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같이 경험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완벽한 집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27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관람객이 서도호 개인전의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날부터 내년 2월 9일까지 서도호의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한다.

처음 이 프로젝트는 서울과 뉴욕, 나중에는 런던을 잇는 삼각형이었다. 스케치북 안에서 그 형태는 계속 나아가 원이 된다. 형태가 닫히게 된 이유를 작가는 나이에서 찾았다. 

“나이가 들면서 시간은 선형적(linear)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어요. 전에는 선형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했죠.” 

“‘퍼펙트 홈’이라는 건 서울, 뉴욕, 런던의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그 집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빈 공간(void)예요.” 그는 전시장에 설치된 집 모형을 동그랗게 이어둔 부분을 가리키며 “여기 중간에 있으면 이걸 다 볼 수 있잖아요”라며 “이 빈 공간이 나한테는 완벽한 집이 아닌가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그가 좋아한다고 덧붙인 개념은 편재(omnipresence)다. “그거는 다시 말하면 시공간의 한계를 벗어나야만 가능한 거예요.” 

그는 자신이 건축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제가 건축가와 다른 점은 저는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고, 건축가들이 만든 공간에 살면서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다만 공통점은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공간을 그 안에서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주를 만든 어떤 존재가 있다면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같은 전시실에는 그가 지었거나 살았던 공간들을 모두 축소해 만든 모형이 함께 놓여 있다. 관객은 그것들을 하나씩 본다. 

“제 머릿속에서는 이 모든 전체가 다 보여요. 그래서 제 머릿속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작가가 찾는 완벽한 집이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빈 공간이라면, 그가 가진 가장 작은 집은 가족이 입던 옷으로 만든 코트 한 벌이다. 작가가 눈물을 흘리며 입었던 그 코트는 지금 전시장에 옮겨져 있어, 그는 아직 다시 입어보지 못했다. 

“제가 소위 말해 ‘다음 세상’으로 간다면 이 옷을 입고 가고 싶습니다.” 

30년 넘게 집을 옮겨 지어온 작가가 가장 최근 만든 집은, 몸에 걸칠 수 있는 크기였다. 가장 작가에게 가깝고, 개인적이며, 서도호라는 거장의 현재를 말해주는 것이다. 


임정원 기자 [[email protected]]